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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를 치료받지 않는 이유

Created
2024/06/1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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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케어사용자인식
BBC코리아
Research Date
https://www.bbc.com/korean/news-58114018
젊은 ADHD의 슬픔'의 저자 정지음(29) 씨의 어릴 적 별명은 짱구였다. 어린시절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도는 학생"이었다는 그는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시작한 일을 끝내지 못하며, 충동적으로 욕설을 내뱉고, 지각을 일삼는다.
오죽하면 그의 부모로부터 "자기 결혼식에도 늦을 놈"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
정 씨처럼 반복되는 실수, 일을 시작하고 끝내지 못하는 집중력, 잦은 싫증, 어려운 감정 조절, 모두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성인 ADHD'의 증상이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는 호르몬 분비에 문제를 초래해 집중력과 충동성에 영향을 주는 질환이다.
WHO는 성인 ADHD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10대 원인 중 하나며, 치료해야 할 정신과적 장애라고 밝혔다.
전 세계 성인의 약 6.76%가 겪는 증상임에도 오늘날 성인 ADHD는 대부분 '성격 문제'로 치부된다.
질환이란 인식이 부족하고 진단도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성인 ADHD 치료율은 2017년 기준 0.76%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음주운전, 이혼, 실직, 이직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성인 ADHD와 연관돼 있을 수 있다며 치료를 권유한다.

'게으르다'는 오해

정동청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BBC 코리아에 성인 ADHD 환자가 "게으르거나 의지가 약한" 모습으로 쉽게 오해를 받는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ADHD가 "업무를 할 때 실수를 자꾸 하거나, 일을 시작하는 것을 미루거나, 업무 도중에 자꾸 다른 일을 하고, 마무리하는 걸 어려워하는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며, 이러한 증상들이 흔히 동료나 친구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심리적 위축과 긴장을 증가시켜 ADHD로 인한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고 분석했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사진 설명,오늘날 성인 ADHD의 증상들은 대부분 '성격문제'로 간주한다
ADHD 환자는 왜 이러한 증상을 보일까?
심세훈 순천향대 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DHD의 의학적 원인으로 "실행기능 결함"을 지목했다.
실행기능은 쉽게 말해 사고와 행동의 의식적 조절과 관련된 일련의 정신 기능을 뜻한다. 우리 신체의 실행기능에 결함이 생기면 뇌에서 실행 지시를 내리는 전두엽의 기능 중 집중 효율성이나 반응 억제 등에 문제가 생기는데, 심 교수는 이것이 "멀티태스킹, 업무 완성, 꼼꼼한 검토 등 업무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이외에도 실행기능 결함이 "분노 조절이나 충동 억제 등을 어렵게 해 이혼, 음주운전, 실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 교수는 또 ADHD가 전두엽 발달 장애로 생기는 신경정신질환이며, 우리 사회가 이를 성격 문제가 아닌 "당뇨와 같은 질환으로 보고 치료를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원장 역시 "예전보다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성인 ADHD뿐만 아니라 정신과 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아직 남아있다"며 "이는 ADHD 환자의 심리적 위축은 긴장을 증가시키고,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치료하면 괜찮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사진 설명,'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써야 잘 볼 수 있듯이, 집중력에 문제가 있을 때는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성인 ADHD 환자들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심 교수는 ADHD가 치료 가능할뿐더러, 적절히 치료됐을시 오히려 장점으로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ADHD 환자들은 대체로 에너지 레벨이 높고 창의적인 것으로 알려져있다"며 "약물치료를 통해 실행기능을 보완했을 때 장점과 조화를 이뤄 더 큰 성취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 빌 게이츠, 존 F. 케네디, 스티브 잡스, 아인슈타인, 에디슨 등이 ADHD 경향을 보였다고 알려졌다.
정 원장도 ADHD는 비교적 쉽게 치료될 수 있는 질환이라며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써야 잘 볼 수 있듯이, 집중력에 문제가 있을 때는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성인 ADHD는 치료 결과에 대한 만족감도 다른 질환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치료받지 않는 이유

하지만 ADHD는 인지율과 치료율이 가장 저조한 질환이다.
올해 초 발표된 세계보건역학레퍼런스그룹(GHERG), 영국, 그리고 중국 대학 연구진의 공동 연구 보고서는 전 세계 성인 ADHD 유병률을 6.76%, 만성적 유병률을 2.58%로 추산했다.
이는 곧 전 세계적으로 최대 3억6633만 명의 성인이 ADHD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실제 치료를 받는 이들은 극소수다.
한국의 경우 성인 ADHD 유병률은 1~5%까지 다양하게 보고된다. 즉 약 40만 명에서 200만 명의 성인이 ADHD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지만, 2017년 기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를 보면 실제 ADHD 진료를 받은 성인은 8214명에 불과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도 같은 해 일반인 1068명 및 정신의학과 전문의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성인 ADHD 치료율은 0.76%로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단 어렵고, 부정적 인식

전문가들은 저조한 치료율의 원인으로 진단의 어려움, 편견 등을 꼽았다.
정 원장은 "ADHD의 진단 자체가 환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지하다 보니, 환자가 자신의 증상에 익숙해진 경우 문제를 낮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병원 방문이 늦어지거나 병원에 와서도 ADHD 진단을 받지 못하는 환자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ADHD를 다른 질환으로 오해하는 환자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ADHD는 다른 질병과 다르게 공존성을 가진다. 우울증, 도박 중독, 알코올 중독, 흡연, 분노조절장애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 기저에 있는 ADHD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성인 ADHD에 큰 관심이 없다면 눈에 두드러지는 현상만 치료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또 ADHD의 진단기준이 2013년에서야 성인에게까지 적용된 점도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ADHD는 2013년 미국에서 개정된 DSM-5 진단기준을 통해서야 성인 질병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전에는 소아, 청소년 질환으로 구분돼 있었다. 진단 체계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인식이 부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GETTY IMAGES
사진 설명,빌 게이츠도 ADHD 경향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원장은 이어 정신 질환에 대한 만연한 '편견' 역시 ADHD의 치료를 막는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환자들이 "ADHD를 지나치게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다 보니 정신과를 방문하고 치료받는 것도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이런 편견과 다르게 "대다수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 ADHD 환자 중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10%도 안 된다"며 "대부분은 가벼운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을 뿐이다. 치료를 통해 사회적 활동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환자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백신도 부작용이 있지만 접종받아야 하잖아요. 득이 실보다 크니까요. ADHD 치료 역시 마찬가지예요. 득이 훨씬 큽니다. 또 환자들이 호소하는 대부분 부작용은 약물에 의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인과성이 증명된 부작용은 매우 적어요."
그는 이어 "ADHD의 증상들은 대부분 상담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경우 생물학적, 약물적 치료 개입이 있어야 치료가 된다"고 강조했다.
"분노나, 충동적 행동, 무기력 등을 성격으로 보지 않고 질환에 의한 증상으로 여기며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